거인 Tom Waits의 1978년작이자 70년대 팝음악을 대표할 수 있는 걸작 중 하나. 낭만적인 분위기마저 느껴지는 멜로 영화 같은 작품. Romeo Is Bleeding (영화로도 만들어졌던), Christmas Card from a Hooker in Minneapolis, Blue Valentines 등 대표곡 수록. 80년대 이후와는 또 다른 매력이 풍기는 아름다운 앨범.

...

그 가운데 한장만 고르라면 물론 그래미 수상작 <본 머신>이지만 한 곡만 뽑아야 할 경우엔, 가장 재즈적인 분위기를 내보았던 <블루 발렌타인> 수록곡 <미니애폴리스의 창녀로부터 온 크리스마스 카드>다. (그러고 보니 이런 문장이 떠오른다. '톰은 미니애폴리스의 창녀가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를 기다린다.') 무성의한 듯 감칠맛 나는 피아노도 피아노지만 사실 이 노래의 진짜 매력은 가사에 있다. 부른다기 보다는 차라리 그냥 뇌까린다고 하는 게 맞을 정도로 높낮이의 변화가 없는 멜로디지만 그런 소박함이 오히려 감동을 준다. 한심한 낙오자들의 비천한 인생을 묘사한 얘기지만 어떤 멜로드라마보다 아름답다. 이무영. 박찬욱 공역본으로 감상해 보시겠다.


찰리, 나 임신했어요.
지금 유클리드 거리 끝
9번가의 낡은 책방 위에 살아요.
마약도 끊었고 위스키도 안 마시죠.
남편은 트럼본을 불어요.
철도일 하는 사람이죠.

그이는 날 사랑한다고 해요.
비록 자기 아인 아니지만
자기 아이처럼 키우겠대요.
그리고 어머니가 끼던 반지를 내게 주었어요.
토요일 밤이면 그이는 날 데리고 춤추러 나갑니다.

찰리, 당신 생각이 나요.
주유소 앞을 지날 적마다
당신 머리에 묻은 기름때를 떠올리죠.
아직도 '리틀 앤서니 & 더 임퍼리얼스'의
레코드를 간직하고 있어요.
하지만 누가 전축을 훔쳐가 버렸죠.
열받을 만하죠?

마리오가 체포됐을 때
난 거의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요.
그래서 식구들하고 살려고
오마하로 돌아갔죠.
그런데 나 알던 사람들은
죄 죽었거나 감옥에 있더군요.
그래서 미니애폴리스로 돌아왔죠.
이제 그냥 여기서 살까봐요.

찰리. 그때 사고 이후 처음으로 행복한 것 같아요.
우리가 마약을 사는 데 썼던 그 많은 돈들을
지금 갖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.

중고차 가게를 하나 사고 싶어요.
차는 절대 안 팔고
그날 기분따라 매일 바꿔 타고 다니는 거예요.

그런데 찰리.
내 처지를 솔찍하게 말해 줄까요?
나, 남편 없어요.
그러니까 트럼본도 불지 않아요.
그리고 있죠.....
사실은 변호사 줄 돈이 당장 필요하거든요.
찰리, 난 요번 발렌타인 데이나 돼야
보석으로 나갈 수 있을 거예요.


긴 말이 필요없다. 그냥 내가 미국 감독이라면 이 제목, 이 스토리 그대로 영화 하나 꼭 찍는다. 캐스팅도 끝났다. 이 앨범 재킷 뒷면을 보면 톰 웨이츠가 빨간 원피스 입은 여자와 사랑을 속삭이는 사진이 있다. 뒷모습만 보이는 그녀는 한때 애인이었던 릭키 리 존스인데 '여자 톰 웨이츠'라고 할 수 있는 이 퇴폐적인 가수를 창녀 역으로 쓰는 것이다. 물론 찰리 역은 '남자 릭키 리 존스'인 톰 웨이츠로 하고. 감옥에 들어앉아 옛 애인에게 편지 쓰는 창녀의 심정, 돈 부쳐달라는 사정을 하여고 펜을 들었다가 비참한 심정이 되어버린 그녀는 행복한 거짓말만 잔뜩 늘어놓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용건을 꺼낸다. 그러고는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변변히 인사도 못한 채 서둘러 편지를 끝내는 것이다. 이 마무리 반전은 '너무 웃기는 나머지 슬퍼지는' 종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. 게다가, 아무 생각없이 되는 대로 살아온 철부지 창녀가 꿈꾸는 행복이란 또 얼마나 하찮은가. 아마도 이 여자한테 여러 번 속아봤을, 그래서 사랑하지만 끝내는 떠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은 이 노동자 애인은 결국 또 돈을 부쳐주고 말 게 뻔하다. 그리고 발렌타인 데이가 되면 미니애폴리스 교도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지.

이 노래를 들을 적 마다, 주유소 지나면서 애인 머리의 기름때를 그리워하는 대목에만 가면 난 그만 울고 싶어지곤 한다. 이런 가사는 톰 웨이츠 아니면 못 쓴다. 달리는 택시 뒷자리에서 태어나 학교도 안 다니고 부랑아로 청춘을 보낸 자 아니면 이런 거 못 쓴다.

- 박찬욱


Tom Waits - Blue Valentine


01. Somewhere (From West Side Story)
02. Red Shoes by the Drugstore
03. Christmas Card from a Hooker in Minneapolis
04. Romeo Is Bleeding
05. Twenty-Nine Dollars
06. Wrong Side of the Road
07. Whistling Past the Graveyard
08. Kentucky Avenue
09. A Little Bullet from a Pretty Blue Gun
10. Blue Valentines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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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osted by 루저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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